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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16. 23:24 쓰기/습작

습작1(20070524)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혼자였다.

혼자라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어둠이 내려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전까지 이 공원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원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거나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석양이 지고 조금씩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갈 때 쯤에야 집에 가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중심을 잃어 옆으로 쓰러졌다.

누군가 본 건 아닐까하여 주위를 둘러보다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눈이 마주친 그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무릎께로 팔을 내밀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쮸쮸쮸, 냥냥"

작은 동물을 부를 때나 내는 소리를 냈다.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하며 어이없이 쳐다보니, 소리를 그치고 눈을 마주치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고양이냥, 다쳐서 일어나지 못하는거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내 머리를 묻고는 머리를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이야, 고양이냥, 머리털이 진짜 부드러운데? 보는 거랑 다르게 말이야. 뻣뻣할 줄 알았는데."

라는 무례한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화를 내야 하는데 그의 품이 따뜻해서인지 멍하니 나른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감기려는 눈을 확 뜨고 정신을 차렸다.

두 손으로 그를 팍 밀치고 절룩거리며 서너 발자국 멀리 벗어나 흘깃 그를 뒤돌아 보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는 무릎꿇은 자세로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점심때가 지나 공원에 나갔다.

어슬렁거리기도 귀찮아 적당한 벤치에 앉았다.

지나가는 이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따사로운 햇살에 나른함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때, 한가로운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와 번뜩 의식이 들었다.

 "야, 여기 앉아 있었네, 고양이냥."

라고 하며 어제의 그 남자가 덮석 옆자리에 앉았다.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역시 귀엽잖아."

라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손으로 머리를 탁 쳤다.

뜻밖의 공격에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주춤하더니,

 "에헤, 반항하는 거야? 진짜 귀엽네."

라고 하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맥이 빠지고, 귀찮아졌다.

나른한 오후 햇살 탓일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쓰다듬는 느낌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러고 있으니 또 졸음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난 그에게 기대어 자고 있었던 것이다.

부스스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가,

 "피곤했던 거야? 오래도 자네."

라고 무안을 준다.

얄미워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고는 뛰어 몇발자국 멀어져 슬쩍 뒤돌아 보곤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그가 따뜻한 눈으로 웃고 있었다.


 오늘도 공원에 나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조금 궂은 날씨가 불안하다.

비가 올 것 같은 바람이 분다.

괜히 불안한 마음에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지쳐버렸다.

오늘따라 공원에 사람이 많아 한참을 헤맨 다음에야 빈 벤치를 찾을 수 있었다.

요즘들어 더 빨리 지치고, 나른해지는 것 같다.

몽롱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우울한 날씨에 몸도 마음도 괜시리 축 처진다.

 '툭'

얼굴에 물이 튀었다.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그럴만한 곳은 없다.

역시, 비인가.

손을 내밀어 가늠하니, 느낄까 말까 한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씩 빗발이 굵어지자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떠나 사라진다.

비를 피하러 어디에든 가는 거겠지.

어쩐지 움직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그냥 비를 맞고 있자니 청승맞은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외롭고 슬프다고 생각했을 때,

 "여어, 비가 와서 오늘은 없을 줄 알았는데. 고양이냥은 정말 나랑 통하나보네."

라며 옆에 앉는 그가 보인다.

처량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은 그는, 비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빗줄기는 더욱 세졌다.

 "아휴, 우리 고양이냥도 다 젖었네. 나랑 똑같네."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이 사람도 외롭고 슬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아, 나는 비를 싫어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우웅우웅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털썩'

세상이 쓰러졌다. 아니, 내가 쓰러졌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먼 곳에서 소리가 들린다.

 "감기 걸리겠, 아니, 고양이냥!! 왜그래? 고양이냥......"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리다 곧 아주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눈을 뜨니 낯선 곳이다.

옆에 그가 자고 있다.

뒤척이다 일어나니 그가 깼다.

 "어, 일어났네."

그가 나를 측은하게 쳐다본다.

밖을 보니 아직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하늘은 더 많이 어두워졌다.

밤인지도 모르겠다.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쓰다듬는다.

 "불쌍하게도. 고양이냥,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나랑 같이 보내지 않을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이 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그가 현관쪽으로 간다.

 "누구?"

 "현종이."

아는 사람인지 순순히 문을 연다.

문이 열리는 틈을 타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고양이냥!!"

 "뭐, 뭐야."

그들의 소리를 등지고 달린다.

밖으로 나가니 아직 시원한 소리를 내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잔뜩 비를 맞고 돌아다녔던 탓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땀투성이에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침도 안 된, 이른 새벽이었다.

어쩐지 잠도 오지 않아 꽤 오랫동안을 그저 멍한 상태로 있었다.

퍼득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날이 밝은지 오래였다.

조금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든다.

어느 새 자연스럽게 발은 공원을 향하고 있었다.

어제 온 비 때문인지 세상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선명한 색깔들이 들뜬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가 처음 나를 찾아 준 벤치가 보인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스륵 벤치 위로 엎드려 버렸다.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라면 왠지 고양이냥이 있을 것 같았지."

내가 엎드린 머리 쪽에 앉으며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내게 덮어준다.

 "계속 잠만 자고....."

발끈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본다.

 "아니야, 알았어. 알았어."

그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꾹꾹 누른다.

난 다시 고개를 숙인다.

뭔가 행동을 하기도 지친다.

아마도 이런 게 끝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에게 안겨 조용히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이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어쨌는지, 그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통한 것이리라.

그가 날 자신의 품에 포옥 안아주었다.

역시 따뜻했다.

그리고 묘하게 느껴지는 떨림은 그가 울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아,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날 위해서 울어주다니.

아, 난 정말 행복한 고양이냥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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