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때만 해도 나름대로 만만하게 생각했던걸까.

700페이지가 넘는 책 두권을 집으며, 그 무게를 실감하면서도 만만하게라..

하지만 정말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였고, 이름만으론 아주 친숙한 쇼팽의 이야기가 아닌가.

어쩌면 단순히 표지가 맘에 들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산 것이 아니라, 단지 히라노 게이치로의 가장 최근 소설이 표지가 맘에 들어서, 그리고 단연, 이 사람의 소설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는 책은 아니었다.

단지, 갖고 다니기가 참 버거웠을 뿐.


시간을 들여야 읽을 수 있는 분량임에도 시간이 나지 않아 겨우 조금씩 읽어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도, 한 번에 주욱 읽어 나가는 편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밤새서 읽으면 그 다음 날이 죽을 맛이고, 낮에 읽자니 남의 돈받고 일하는 주제에 너무 뻔뻔해 보일까봐 말 그대로 틈틈이 보았다.


어떤 의미로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괴로운 소설이 되었다.

이 소설이 나의 민감하고 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쑤셔댔다.

왜 이렇게 괴로운 소설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 채, 혹자는 활자중독이라 외치겠지만, 또 잊으려고 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면서도, 끝까지 읽어 지금은 뿌듯하다.


그의 적나라한 죽음에 대한, 죽음의 이후에 대한 두려움의 묘사는 나를 아직도 괴롭히는 오래된 고질병과 같은 생각.

죽음의 공포.

그 끝이거나 영원이거나 무엇이든간에, 그 말이 주는 무시무시한 중압감. 난, 이 작품에서 그 생생한 느낌을 다시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목이 '장송' 이었음에도.

아니, 누군가 나의 공포를 글로 옮겨놓아 이렇게 괴롭힐 줄은 몰랐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읽는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

약간의 악몽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좋았다.

클래식 참 별로였던 나도 읽을 수 있을만큼 읽는 것 자체는 편한 소설이었다.

쇼팽의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조르쥬 상드에 대해, 들라크루아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많이 먹기 전에라면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난 또, 언제 나올지 모르는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젠 누구를 읽으며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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