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들을 꿋꿋하게 읽어왔던가.

이렇게 금방 읽어버리다니, 억울해.. 억울해..

단편이 네 편.

청수, 다카세가와, 추억, 얼음 덩어리.

내가 읽어온 어느 소설과도 다르다.

그렇지만 소설이었다.

아니, 소설일까..

내가 읽은 것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니라면 무엇일까.

내가 느낀 것은 그의 글이 여전히 무거웠다는 것.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들지만, 그의 문장이 가지는 무게는 오히려 더 묵직해진 느낌.

여전히 잘 설명할 수 없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

조금은 갈증이 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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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에 다닌다.

크리스천이냐고 하면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 이유는 '진짜' 크리스천들에게 미안해서일까.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한 번쯤 천국의 지루함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난 많이 고민했었다.

천국이 내게도 '천국' 일 것인가, 라는.

이야기는 아마겟돈의 지령을 받고, 이를 저지하려는 지상의 악마 크롤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지상의 천사 아지라파엘을 설득해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게 만든다.

그들에겐 아마겟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인간이 모르는 이야기를 위해 애쓰는 천사와 악마, 그리고 마지막을 예고하는 징조들.

곳곳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사태들이 하나를 위해 한 곳으로 달려가지만, 세상을 뒤엎을 존재는 지구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다.

사태는 종료되고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시종 깔깔대며 읽을만큼 뒤집어지게 웃긴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손바닥을 탁 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지금 어딘가 악마 크롤리와 천사 아지라파엘이 언젠가의 아마겟돈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막상 그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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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을 읽고 다시는 하루키를 읽지 않겠다 했었나..

결심같은 것들은 대체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내뱉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시 읽지 않겠다고 하고, 당분간 책은 사지 않겠다고 했지만, 역시 나라는 사람은 자신에게조차 이다지도 뻔뻔스러울 수가 있을까.

어찌 되었든 제목이 맘에 들어버린 관계로 사버린 책이다.

어쩐지 실망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의 제목, 기담이라잖은가.

이런 종류의 환상을 담은 내용을 꽤 좋아하는 편이니까.

단편집이라 그런 것인지, 페이지 수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인지, 잡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몇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었다.

자신의 실제 경험인지 아니면 그것조차 지은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없는, 프롤로그나 머릿말 정도인 줄 알았던-알고보니 제목도 있는 단편이었던- 첫번째 이야기와 하와이에서 바다에-정확히는 상어에-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만 기억이 난다.

별로 비슷한 것 같지도 아닌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을 생각하면, 하야시 마리코의 '첫날밤' 이 떠오른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 머리속에서 얽혀버린 것인지.

어쨌든 즐겁게 읽었고, 나를 괴롭히던 헷세에게서 해방된 뒤라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내 안에서 이 작가에 대한 생각은 다음 작품을 읽고 난 다음에 정리하겠다.

이 전의 작품을 다시 펴보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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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학상 중에 아쿠타가와상이 따로 있을 정도라면 이 사람이 일본 문학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리라 생각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아쿠타가와라는 사람은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서 집게된 책 두권, 라쇼몽과 월식.

나는 책을 살 때 남의 안목에 거의 의지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신문의 평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비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읽어보고 산다-이것이 내가 책을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바보같은 실수를 한 책 두 권.

난 이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단편들만 남기고 죽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출판사도 확인하지 않고 산 나의 불찰도 있지만.

겹친 부분이 일부분이라 그저 다행이라 생각하고 같은 작품은 번역의 다름을 비교하며 읽고 있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가지는 패러독스를 풀어내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부조리한 느낌이다.

그것이 인간 내면의 부조리한 면이다.

그의 환상적인 감각이 한편으로는 어두운 느낌의, 하지만 칙칙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가 단편만을 남기고 죽어버린 일은 내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작품을-물론 나의 이기심이지만-남겨두고 갔어야 했다.

나른한 울림.

낮은 어조의 중얼거림.

환상의 어귀 어디쯤에서 깨어버릴 것 같은 꿈.

그런 느낌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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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하루키의 소설에 질려버린 지금도 이 소설은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며 마치 두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관이 없는듯 밀접하게 뒤집혀 있는 느낌.

완전히 딱 떨어지는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것이 소설을 완전하게 만들어준 느낌이 든다.

이 두 세계의 두 주인공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같은 인물인지, 이 전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 이 후는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하지만, 미완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나.

궁금하고, 또 궁금하지 않다.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마음.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든, 그것이 글로 쓰이고 읽어버리면 무언가 어긋나 버리고, 성에 차지 않게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


그의 소설은 대체로(내가 읽은 중에서는) 환타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환타지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이제 더 이상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만큼은 버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마지막 소설은 아니지만, 내 마음 속에서의 마지막 하루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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